2015년 11월 25일 수요일

소소한 일상 - 치앙마이


치앙마이에서 생활한지 4개월 째, 이제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것 같다.

이 곳에서는 애써 서두르려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잠들고, 일어나고, 식사를 한다. 몸이 피곤하면 자연스럽고 깊게 잠을 잔다. 숙면은 하루를 충실히 살아갈 좋은 에너지가 된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아주 단순하다.

새벽 4시경,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이곳에서는 잠에서 깨어날때 서두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늘 조급한 마음이 들고 서둘러 아침 일과를 마쳐야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그렇지만 이 곳에서의 아침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느리고 차분하다. 그래서 일까. 이곳에서는 체력이 꽤 오래 유지된다.

새벽 5시경, 108배를 끝내고 영감을 주는 책을 피곤하지 않을 만큼 읽는다.

나에게 아침 일과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108배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고, 모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에게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인 셈이다. 108배가 끝나면 주로 좋아하는 책을 읽는데, 최근에는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에 빠져 있다. 나는 월든 같은 책을 한 두 페이지 가량 매일 읽어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책은 늘 사람을 기다려주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

새벽 5시 반, 숙소를 떠나 공동작업 공간으로 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숙소에서 공동작업 공간까지는 걸어서 40분 가량 소요된다. 나는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거리를 걷는 걸 좋아한다. 빈 거리를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산란한 머릿 속이 고요해지고 맑아진다랄까. 무엇보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 하늘을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오전 10시, 과일 쥬스 한잔과 가벼운 산책을 하고,

보통 아침은 가벼운 채식(오이, 당근, 양배추, 또는 과일, 그리고 차 한잔)으로 해결하고, 10경 산책 겸 과일 쥬스 한잔을 들고 작업 공간 주변을 걷는다.

오후 12시, 점심을 먹는다.

이곳에서의 식사는 매우 단순하다. 특별히 미식가의 취미가 없는 지라 음식이 입에 맞으면 같은 레스토랑만 꾸준히 다니는 편이다. 그래서 점심 메뉴는 보통 파파야 샐러드와 자스민 라이스로 해결하고, 가끔 과일을 후식으로 겻들인다.

오후 2~3시경,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잔다.

한포진을 완치하고 요가를 할만큼 건강해졌지만, 여전히 체력이 낮은 편이라 가벼운 낮잠이 체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낮잠을 즐기는 편이기도 한다. 30분~1시간 가량 숙면을 취하고 나면 긴장되어 있던 근육과 곤두서 있던 신경이 안정을 찾는다. 보통 하루 5시간 이상 컴퓨터를 활용하기 때문에 틈틈이 쉬어주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짧은 낮잠 뒤에서는 요가 매트를 펴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해준다.

오후 4시경, 가벼운 산책을 하고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산 뒤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는 2016년 12월까지의 기간을 삶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삼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래서 이후의 시간은 자유롭게 활용하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러 글을 쓰기도 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카페에서 작업하는 즐거움 가운데 한가지는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 내 작업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이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이러한 대화는 또 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좋은 원동력이 된다.

오후 6시경, 저녁을 먹는다. 그 이후 자유 시간,
보통 8시경, 요가를 하거나 가벼운 운동 및 산책을 하고,
10시경, 잠자리에 든다.

보통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쉬어주지만, 정해진 휴일은 없다. 내 작업에 대한 만족도가 일정 수준에 달하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몇일씩 쉬어주기도 한다. 생활은 단순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몇일 전에는 숙소를 옮겼다. 보통 숙소를 옮길 때마다 짐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것은 기부를 하는데,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나누는 기준은 참 애매모호하다. 막상 기부 박스에 넣고 나면 "언젠가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는 말이 맞다. 언제부터였을까. "있으면 있는 대로 좋다"는 마음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는 마음보다 앞서기 시작한 때가.

항상 짐을 정리할 때마다 생각이 든다. 그동안 "불필요한 것"에 휘둘려 얼마나 몸과 마음이 산란했었는지. 이제는 "있으면 편한 것들"에 대한 집착도 버리려 노력 중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홀연히 떠날 수 있는 가벼운 이가 되고 싶다. 하지만 막상 꾸린 짐을 보면 늘 한숨을 쉬게 된다.

이상한 것은 특별히 쇼핑을 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았음에도 막상 짐을 꾸리면 그간 알게 모르게 불어난 세간 살이들이 꽤 많다.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한달간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하자! 며 짐을 쌌다. 물론 이번에도 실패했지만 말이다.

짐을 싸는 일은 언제나 내 삶을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귀중히 여기는지 등 내 모습을 다시 상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방을 보면 방주인의 성격을 알 수 있듯,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의 종류와 무게를 살피는 일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숙소를 옮기는 일은 나의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늘 실망감을 안게 되지만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들여볼 기회가 되어 좋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벼워지는 것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는 것이 또한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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